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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 of my eyes.

w.danye

 

 

휘날리는 만국기 위로 따스한 햇살이 내린다. 3월의 바람은 아직 차가웠지만 새로운 시작을 맞는 어린 설렘들은 그 한기마저 녹일 기세였다. 살랑거리는 개나리덩굴이 만발한 학교는 활기찬 웅성거림으로 들썩였다. 이내 입학을 축하한다는 방송 소리와 무수한 박수소리가 퍼진다. 유진은 학부모들 틈에서 까치발을 들며 [축, 입학]이 적힌 플랜카드가 펄럭이는 것을 한참동안 바라보았다. 유현이의 입학식이었다. 끝나지 않는 박수소리에 유진도 덩달아 손뼉을 치며 동생의 반이 서있는 곳을 찾았다. 박수를 마지막으로 준비된 행사가 모두 끝났는지 스피커 소리가 잦아들었다. 동시에 운동장 뒤편을 차지하고 있던 학부모들이 하나 둘 제 아이를 찾아 움직였다. 유진도 운동장을 가로질렀다.

 

부모의 부재는 익숙했다. 생각보다 잘 해내는 유진의 형 노릇에 부모의 외출은 더욱 잦아졌고 형제는 자연스레 적응해갔다. 유진 또한 돌봄이 필요한 나이였음에도 어린 동생을 돌보는 건 온전히 유진의 몫이 되었다. 당연하게도 부모는 유현의 입학식에도 오지 않았다. 그럴싸한 핑계를 대며 미안해했지만 일부러 만든 핑계라는 것을 형제는 알고 있었다. 결국 유현의 보호자로 참석한 건 같은 초등학교에 다니는 6학년 한유진이었다.

 

“유현아!”

 

옹기종기 모여 있는 8살 꼬마들 사이에서 한 눈에 유현을 찾아냈다. 제 동생이었기에 당연했다. 부모들과 축하를 나누며 사진을 찍는 아이들 틈에서 홀로 서있는 유현에게 곧장 달려갔다. 부모님의 몫까지 세 배의 축하와 기쁨을 주고 싶었다.

 

 

“입학 축하해 유현아!”

“고마워 형.”

“부모님은, 그, 바쁘시니까…형이 대신 축하해줄게.”

“나는 형만 있으면 돼.”

 

유진의 허리 언저리에 폭 기대오는 작은 머리를 반사적으로 끌어안았다. 햇빛을 그대로 받아서인지 따뜻한 머리카락을 살살 쓸어넘겨주자 머리를 맡기고 있던 유현이 배시시 웃었다. 이제 형이랑 같이 학교 다닐 수 있어서 좋아. 귀여운 속삭임에 유진도 환하게 웃으며 유현을 더욱 세게 안아주었다. 두 형제를 스치는 봄바람이 가벼웠다. 화기애애하게 모여 있는 인파 속에서 단 둘뿐인 작은 형제는 단연 눈에 띄었다. 쟤넨 부모님이 안계신가, 왜 애들만 있지, 호기심 담긴 눈빛이 몇몇 따라붙었지만 유진은 개의치 않았다. 유현도 마찬가지였다. 절 보며 웃어주는 형의 얼굴과 진심으로 전해주는 형의 축하만으로도 이미 만족스러운 입학식이었다.

 

 

“얘들아, 미안한데 좀 만 옆으로 비켜줄래?”

 

마주보며 웃고 있는 형제의 틈에 불쑥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학교를 배경으로 제 아이의 사진을 찍어주고 싶은 학부모들 중 하나였다. 운동장 정중앙에 서있던 형제가 사진에 방해가 된 모양이다.

 

 

“아 네. 유현아, 저쪽으로 가자.”

 

흔쾌히 자리를 비켜준 유진은 유현의 손을 잡고 운동장 가장자리로 걸어갔다. 슬쩍 돌아보니 좀 전까지 형제가 서있던 자리는 금세 다른 아이의 차지가 됐다. 학교에 입학했다는 것이 그렇게 좋은지 아이는 활짝 웃고 있었고 부모는 그 모습을 놓칠 수 없다는 듯 열심히 찍어댔다. 찰칵, 찰칵. 전자음이 유독 크게 들린다 싶어 주변을 둘러보니 자리를 잡고 선 가족들이 저마다의 추억거리를 저장하고 있었다.

 

 

‘…유현이도 찍어주고 싶은데.’

 

미처 생각지 못한 풍경에 유진은 잡고 있는 동생의 손을 꽉 쥐며 두리번거렸다. 아는 선생님이라도 계실까 싶어서였다. 그래도 5년 동안 학교를 다녔는데. 제 담임을 맡았던 교사가 있지는 않을까. 설사 아는 얼굴이 없다 해도 부탁드리면 되지 않으려나. 유현의 새 담임 선생님께라도 요청해 볼 심산이었다. 그러나 유진의 기대와는 달리 이미 지나간 행사에 선생님은 없었다. 다 같이 축하의 박수를 치며 끝난 입학식은 더 이상 진행 할 순서가 없었기에 모두 교내로 옮겨간 후였다. 지금은 자유롭게 사진을 찍거나 학교를 구경하거나 편하게 귀가해도 되는, 온전히 가족을 위한 시간이었다. 유현의 사진을 남겨줄 수 있는 수단이 없다는 것에 초조해진 유진이 저도 모르게 눈가를 찌푸렸다.

 

 

“형. 왜 그래?”

 

주변을 둘러보다 시무룩해지는 유진을 보며 유현은 잡은 손을 흔들었다. 뭐 찾아? 꼭 무언가를 찾는 것처럼 두리번거리는 형을 따라 유현도 고개를 휘휘 돌렸다. 유진은 그런 동생을 보며 찡그린 미간을 풀었다. 꼭 잡은 손을 당기며 묻는 동생에게 불룩해진 볼을 감추려 한숨을 쉬었다.

 

“유현아…미안해. 형이 핸드폰이 없어서 너 사진하나 못 찍어주네.”

“응? 괜찮아 형. 난 그런 거 상관없어.”

“아냐. 어떻게 상관이 없어. 진작 생각했어야 하는데, 한 번밖에 없는 날인데….”

 

 

유진은 5년 전 제가 초등학교에 입학했던 때를 떠올리며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그 땐 유현이가 더 아가였기에 부모님과 함께 유모차를 타고 와주었었다. 아빠가 축하한다며 작은 꽃핀을 가슴에 달아주셨고 엄마가 기특하다며 사진을 찍어주셨다. 세 살배기 유현이도 자그마한 손을 흔들며 유진에게 아는 척을 했었다. 이미 한 번 경험해 본 적 있는 입학식인데. 꽃도, 카메라도 준비하지 못한 제 미숙함에 어쩐지 울적해졌다. 왜 미리 생각을 못했을까. 유현이를 축하해줄 수 있는 건 온전히 자신밖에 없는데. 핸드폰이 없으니 카메라를 구해볼걸. 선생님께 진작 부탁드려볼걸. 아니, 부모님이 와주셨더라면. 그랬다면, 유현이와 같이 사진도 찍을 수 있었을 텐데….

점점 퍼지는 미안함과 속상함에 고개를 숙였다. 고작 열 셋이었던 유진은 금방이라도 넘칠 것 같은 눈물을 다스리는 방법 같은 건 몰랐다. 어떡하지. 유현이도 사진 찍어주고 싶은데.

 

유현은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 채 손을 꽉 쥐기만 하는 유진을 빤히 올려다보았다. 동그란 눈을 두어 번 꿈뻑이고는 형의 손을 놓았다.

 

“형. 이거 볼래? 유치원에서 배운 건데.”

 

유현의 부름에 입술을 꾸욱 눌러 다문 유진이 고개를 돌렸다. 유현은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형의 시선을 끌었다. 양 손의 엄지와 검지만 펴고, 엄지를 반대쪽 검지에, 검지를 또 반대쪽 엄지에 붙였다. 그리곤 손가락을 교차해 만든 네모난 구멍을 제 눈에 갖다 대었다. 자그마한 네모난 공간에 형의 모습을 담은 유현은 입으로 소리를 내며 눈을 느리게 깜빡였다.

 

“찰칵!”

“……유현아?”

 

내가 형, 사진 찍었어. 유현이 얼굴에서 손을 떼어내며 쑥스러운 듯 웃었다. 손가락으로 이어 만든 카메라 흉내였다. 형의 쳐진 눈썹과 입가를 가만히 보고만 있을 수 없던 유현만의 어린 위로였다. 미안함과 자책감에 어쩔 줄 모르던 유진의 얼굴은 겸연쩍은 표정으로 뒤덮였다. 그러니까 지금. 내 동생이 날 위로 해 준건가. 어색한 표정으로 할 말을 고르던 유진은 결국 참지 못하고 푸스스 웃었다. 한숨처럼 쏟아진 웃음에 고여 있던 눈물 한 두 방울이 떨어졌다. 제가 기분이 안 좋아지려던 걸 알고 일부러 애교를 부리는 눈치 빠른 동생이었다. 모를 리 없기에 고마웠고 예상하지 못했기에 미안했다.

 

“아하하. 유현아. 미안…. 진짜 미안해. 형이 괜히 그런 소리를 해서…”

 

여과 없이 울적한 티를 내버린 자신이 어쩐지 머쓱했다. 유현은 아주 조금은 나아진 것 같은 형의 표정을 살피며 다시 한 번 찰칵, 사진 찍는 시늉을 했다. 아기자기한 손동작에 유진은 어느새 표정을 풀고 동생을 바라보았다.

 

“선생님이 알려 주신거야. 이렇게 사진 찍으면 눈을 감아도 볼 수 있댔어.”

“우와. 정말? 눈을 감았는데 어떻게 보여?”

 

유진은 어린 동생의 최선에 일부러 크게 반응했다. 기특한 마음에 자꾸 웃음이 나왔다. 또박또박 이야기하는 동생의 머리를 한 번 쓰다듬고 허리를 숙였다. 제 무릎을 짚고 자세를 낮췄다. 유현과 눈높이를 맞추자 유현의 작은 프레임 안에 유진의 얼굴이 가득 찼다.

 

“진짜 사진은 눈 떠야만 볼 수 있는데, 이렇게 찍은 사진은 눈에 담는 거라서 계속 볼 수 있는 거래.”

 

유현은 시야에 가득 찬 형의 얼굴을 따라 작은 네모를 요리조리 움직였다. 제 말처럼 눈을 감아도 계속 볼 수 있게 여러 각도에서 형을 담았다. 다정하게 바라봐주는 눈을 담고 유현아, 하고 불러주는 사랑스러운 입술도 담았다. 늘 따뜻하게 쓰다듬어주는 작은 손도 담았다.

유진은 유현의 손이 움직이는 대로 시선을 따라가다 얼른 유현처럼 제 손을 올렸다.

 

그래? 그럼 이번엔 형이 찍어줄게. 동생이 하던 것처럼 양 손의 엄지와 검지를 겹쳐 네모난 카메라를 만들고 유현을 향해 뻗었다. 유현보다 조금 더 큰 프레임에 동생의 모습을 담았다. 진짜 사진을 남길 수 없다는 것이 아직 아쉽긴 했지만, 동생의 귀여운 위로를 유진도 전심으로 받았다. 정말 사진이라도 찍는 것처럼 손가락을 눈가에 댄 채 한 쪽 눈을 감았다.

 

진짜 사진으로 남길 수 없다면 유현의 말처럼 이렇게 눈으로 담으면 된다. 머리에 새기고 기억 속에 남기면 되는 것이었다.

 

“유현아! 꽃이랑 같이 찍을까?”

 

다른 가족들의 사진에 방해가 되지 않게 걷다가 어느새 가장자리까지 밀려나있었다. 만발한 개나리덩굴이 늘어진 담장 근처였다. 유진은 유현을 개나리꽃 옆에 세워두고 몇 발짝 떨어졌다.

 

“아 예쁘다. 내 동생.”

 

바람을 따라 흔들리는 동생의 곱슬머리를 담았다. 유진을 바라보며 행복한 듯 휘어진 예쁜 눈을 담았다. 형, 하고 부르며 미소 짓는 올망졸망한 입술을 담았다. 아무도 기억하지 않을 동생의 모습을 담고. 이렇게 티 없는 유현의 모습을 간직하고 싶었다. 다른 학부모들처럼. 형이자 부모였던 유진도 연신 저만의 카메라에 그 모습을 담았다.

 

유진이 시키는 대로 얌전히 노란 덩굴에 어우러져있던 유현이 다시 유진 쪽으로 다가왔다.

 

“형. 나도 또 찍어주고 싶어.”

“어? 오늘은 유현이 입학식이니까 형이 찍어줄게.”

“그치만, 나도 형을 담고 싶은데. 안 돼?”

 

유현은 두 손을 움칠거리며 재차 작은 네모를 만들어냈다. 형의 대답을 듣기도 전에 손을 마주 올렸다. 다행히 기분이 완전히 나아진 건지 유진은 다시 맑게 웃고 있었다. 그렇게 바라보고 있는 형의 모습을 남기고 싶었다. 유진보다 조금 더 작았던 유현의 프레임엔 온전히 한유진만이 담겼다.

 

“안되긴. 당연히 되지.”

 

두 네모의 공간 너머로 한 쪽 눈을 감은 형제의 시선이 담겼다. 만발한 꽃잎처럼 화사한 미소가 마주 닿았다. 살랑살랑한 봄바람이 작은 공간을 채우고, 운동장 가장자리를 가득 매운 노란 개나리꽃이 프레임 안에서 흩날렸다. 눈을 감아도 선명하게 보이는 두 형제가 비슷하게 웃었다.

 

눈을 감아도 선명하게 느껴지는 행복이었다.

 

 

 

 

 

*apple of my eyes : (관용)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만큼 소중한 것, 사랑하는 사람.

​다네 님 (@4dany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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