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봄.
-Written by 나인.
화창한 여느 봄 날. 핑크 빛으로 어여쁘게 만개한 벚꽃 잎이 바람을 타고 공원에 사뿐히 내려앉았다. 책가방을 야무지게 맨 유진은 힘찬 발걸음으로 어린 유현이의 손을 잡고 공원으로 나왔다.
“유현아, 여기 앉아봐! 형이 우리 유현이랑 벚꽃 그려줄게.”
“응, 형아.”
벚꽃 나무 아래 벤치에 유현을 조심스럽게 앉히고, 유진은 책가방 속에서 스케치북과 크레파스를 꺼냈다. 유진은 검정색 크레파스를 집어 동그랗게 유현의 얼굴을 그렸다. 그 다음 머리카락, 눈, 코, 입 순서대로 하나씩 스케치북에 그려나갔다.
유현은 제 형인 유진이 저를 바라보며 집중하는 모습에 살포시 미소 지었다. 형이 따뜻한 시선으로 저를 바라봐 줄때면 언제나 가슴속에 따뜻한 해님이 들어온 것 같았다. 따뜻하고 포근해서 영원히 떨어지고 싶지 않은. 이 세상에서 유현이 가장 사랑하는 사람.
유진은 유현이 저를 빤히 바라보는 시선이 느껴져서, 부러 과장되게 현란한 손놀림으로 그림을 그렸다. 하나밖에 없는 동생 유현이에게 멋있어 보이고 싶었던 초등학교 3학년의 허세였다. 어디서 본건 있었던 유진은 괜히 한쪽 눈을 찡그리고, 크레파스를 들어 올리며 이것저것 재보는 척했다. 이미 스케치북에는 유현을 그린 그림이 완성되어있음에도 불구하고.
유현은 그런 유진을 보며 자그맣게 말했다.
“형, 멋있어.”
“이 정도쯤이야. 유현아, 조금만 기다려. 거의 다 완성 했어.”
유진은 우쭐하는 표정을 짓다 금방 색칠하기에 돌입했다. 검정, 분홍, 초록, 연두 여러 색들이 유진의 손에 잡혔다가 떨어졌다. 이윽고 색칠까지 끝낸 유진이 유현이를 향해 외쳤다.
“유현아! 눈감아봐!”
“응, 형아.”
유현이 고분고분하게 눈을 감자, 유진은 그림을 유현이가 볼 수 있도록 돌리고 재빨리 유현의 앞에 섰다.
“형, 이제 눈 떠도 돼?”
“응! 짜쨘!!”
유진의 허락에 유현이 감았던 눈을 떴다.
“이건 유현이구, 저거는 벚꽃나무야. 형 잘 그렸지?”
“응, 형이 최고야.”
유현은 벤치에서 내려와서 유진에게로 도도도 달려가 폭삭 안겼다. 유진은 익숙하게 그런 유현을 마주앉고는 등을 토닥였다.
“형, 이 그림 내가 가져도 돼?”
“그래! 우리 유현이가 가져.”
이내 유진이에게서 스케치북을 건네받은 유현이는 스케치북을 제 품 안에 꼬옥 안고, 수줍게 미소 지었다. 유진은 그동안 바닥에 널브러트려놓았던 크레파스를 정리했다. 가방에 크레파스와 함께 스케치북도 넣으려는데, 유현이 스케치북을 품에 꼭 안고는 둘려주지 않았다.
“유현아, 그거 계속 들고 있으면 무거워. 형이 가방에 넣어서 갈 테니까 형한테 줘.”
평소 유진이 하는 말이면 즉시 따랐던 유현이 끝끝내 자기가 들고 가고 싶다며 고집을 부렸다. 하는 수 없이 유진은 크레파스만 가방에 넣은 채, 유현과 벤치에 앉았다. 유진은 선선히 불어오는 바람에 머리칼을 맡긴 채, 유현이를 바라보며 물었다.
“유현아. 그 그림이 그렇게나 좋아?”
“응. 좋아.”
유현이 고개를 크게 끄덕이며 대답했다. 유진은 그런 유현이를 흐뭇한 눈으로 바라봤다. 역시 제 동생은 이 세상에서 제일 귀엽고 착했다. 유진은 몽글몽글 피어오르는 뿌듯함에 유현의 머리를 살살 쓰다듬었다. 유현은 살며시 눈을 감고, 그 손길을 느꼈다.
“유현아.”
유현이 감았던 눈을 뜨고 유진을 올려다보았다. 유진이 유현의 귓가에 벚꽃을 끼우고는 해맑게 웃었다.
“형아?”
“우리 유현이 예쁘다.”
“나 예뻐?”
“응! 예뻐! 우리 유현이 최고야!”
유현의 통통한 뺨이 핑크빛으로 물들었다. 유진은 주체할 수 없는 유현의 귀여움에 유현을 꼬옥 껴안았다. 내 동생 너무너무 귀여워! 최고야!
그때, 그 앞을 지나가던 교복을 입은 한 여학생이 유진이와 유현의 귀여운 모습에, 자신도 모르게 그들 앞에 섰다.
“헐! 너희 너무 귀엽다!! 누나가 그 모습 사진으로 찍어줘도 될까?”
“네?”
유진은 깜짝 놀란 표정을 했고, 유현은 경계심 가득한 눈빛으로 여학생을 쳐다보았다. 여학생은 가방 안에서 폴라로이드를 꺼내며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필름 몇 장 남아있거든. 내가 찍어줄게.”
“....”
“응?”
여학생이 입가에 미소를 덧그리며 말했다. 유진은 잠시 유현의 귀에 걸린 벚꽃을 바라보더니 그 여학생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혀엉...”
유현이 유진의 소매를 붙잡으며 작게 칭얼거리는 소리를 냈다. 그러자 유진이 괜찮다며 유현을 다독였다. 유현은 다시 여학생을 쳐다보며 내키지 않는다는 얼굴을 했지만, 유진의 말을 거스르지는 않았다.
여학생이 거리를 벌렸다 좁히며 사진 구도를 맞추고 있을 때, 돌연 유현이 벤치에서 내려와 나무 아래로 달려갔다. 유진은 당황한 목소리로 유현을 불렀다. 유현은 한참 나무 아래 서 있더니 무언가를 주워 다시 유진의 곁으로 돌아왔다.
그리고는 벤치 위로 올라가 유진의 귓가로 쭈욱 손을 내뻗었다. 그리고 제 손에 들린 벚꽃을 유진이 자신에게 해주었던 것처럼 귓가에 조심스럽게 꽂았다.
“형도 예뻐.”
눈을 반달로 접으며 유현이 예쁘게 미소 지었다. 잠시 제 귓가에 꽂힌 꽃을 만지작거리던 유진도 유현을 따라 방긋 웃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여학생은 멍하니 자신도 모르게 손으로 입가를 가리고, 두 형제의 모습을 감상했다.
‘귀여워!!!!! 쟤네는 아기천사들인가? 잠시 인류를 돌아보러 온 아기 천사들?’
여학생은 속으로 오열했다. 저렇게 예쁜 아이들이 저런 말을 하는 건 반칙이었다.
“누나?”
“응? 아, 미안. 누나가 잠시 한 눈 팔았네. 하나, 둘, 셋 하고 찍을게.”
여학생은 이 귀여운 생명체를 제 폴라로이드로 찍는 것에 무한한 영광을 느끼며 숫자를 세었다.
“여기 보고. 하나, 둘….”
“...”
“셋.”
-찰칵.
셔터가 눌리며 유진과 유현의 모습을 담아냈다. 곧, 지이잉- 소리와 함께 폴라로이드에서 필름 한 장이 서서히 내려왔다. 여학생은 익숙하게 필름을 빼내고 가볍게 흔들더니, 필름을 제 교복 상의 주머니에 넣었다.
“조금 기다려야 하니까 그동안 한 장 더 찍을게. 사이좋게 둘이 나눠가지면 되겠다.”
“네에.”
당장 유현과 찍었던 사진을 보고 싶었던 유진은 시무룩한 표정으로 나지막하게 대답했다. 유현 또한 유진을 따라 표정이 안 좋아졌다. 여학생은 잠시 가방을 뒤지더니 달달한 향기를 풍기는 초콜릿 상자를 꺼냈다.
“이거 먹을래? 엄청 맛있어. 쇼콜라티에 언니한테 받아왔거든.”
“쇼콜라티에?”
“응. 무지무지 초콜릿을 맛있게 잘 만드는 사람이야. 한번 먹어봐.”
여학생은 상자 안에서 초콜릿 두 알을 꺼내 각각 유진과 유현의 손에 하나씩 쥐어주었다. 유진은 예의바르게 고개를 꾸벅이며 감사인사를 했다. 유진은 호기심이 가득한 얼굴로 초콜릿을 입에 쏙 넣더니 깜짝 놀란 얼굴을 했다. 새카만 두 눈이 별처럼 반짝반짝 빛나고, 하얀 볼이 불그스레하게 상기되었다.
“달콤해!!! 맛있어!!!”
유진이 별안간 소리쳤다. 초콜릿을 오물오물 녹여먹는 유진의 얼굴에는 행복함이 가득했다. 그 모습에 여학생이 뿌듯한 얼굴을 했다. 제 손바닥 위의 초콜릿을 가만히 내려다보고 있던 유현은 형이 좋아하는 모습을 보고, 제가 받았던 초콜릿을 형에게 내밀었다.
“이거 형이 먹어.”
“…! 아냐! 이거 진짜 맛있어. 그러지 말고 유현이도 먹어봐!”
여학생은 이 바람직한 형제를 바라보며 상자 안에 초콜릿을 이 두 형제에게 모두 바치기로 했다.
“그거 먹어도 돼, 동생. 사진 찍고 또 줄 테니까.”
유진이 해맑게 웃으며 유현이에게 먹어보라며 부추겼다. 마지못해 유현이 초콜릿을 베어 물었다. 강하게 찔러오는 단 맛에 자신도 모르게 얼굴을 찌푸려졌지만, 형인 유진이 반짝 거리는 눈으로 저를 바라보고 있는 탓에 얼굴을 다시 펼 수밖에 없었다.
“그럼, 다시 찍을게. 여기보고. 하나, 둘, 셋.”
-찰칵.
여학생은 방금 찍은 필름에 인영이 맺히는 동안, 제 상의 주머니에 넣어두었던 사진을 꺼내 유진이에게 건넸다.
사진속의 유진은 카메라를 향해 해사하게 웃었다. 귓가에 꽃인 어여쁜 벚꽃, 발그레하게 붉혀진 유진의 분홍빛 뺨.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는 사랑스러움이 물씬 풍겼다. 반면에 유현은 카메라가 아닌, 유진을 바라보는 모습이 사진에 담겼다. 형의 해사한 웃음에 따라 미소 지은 유현도 아기천사 못지않게 사랑스러웠다.
여학생은 자신이 희대의 명작을 탄생시킨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비록 저 아이들의 사랑스러움을 다 담아내지 못했지만, 이 정도면 꽤 재능이 있는 것 같았다. 여학생은 뿌듯해하며, 선명해져가는 필름과 초콜릿이 담긴 상자를 내밀었다.
“동생이 카메라 쪽을 보지 못해서 아쉽지만, 잘 나온 것 같아. 마음에 들어?”
“네! 고맙습니다.”
유진이 밝은 미소로 대답했다. 그리고 여학생을 향해 고개를 꾸벅이자 유현도 유진을 따라 감사인사를 하며 고개를 꾸벅였다.
“이거 먹고 양치해야하는 건, 잘 알지?”
“네!”
“그럼 안녕!”
여학생은 한씨 형제에게 손을 흔들며 자리를 떠났다. 비록 유명 쇼콜라티에 언니의 초콜릿을 넘겨주게 되었지만 괜찮았다. 자신은 다시 언니한테 뜯어오면 되니까. 괜스레 뿌듯해진 여학생은 밝은 표정으로 히죽히죽 웃으며 집으로 돌아갔다.
그 여학생이 찍어준 사진은 유진이와 유현이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함께 찍은, 첫 사진이 되었다.
나인 님 (@you_467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