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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속에서

 

 

 

 

‘잠이 안 와.’

 

침대에 누운 유현은 밤그늘에 물든 천장을 바라보며 눈을 깜빡이다가, 고개를 살짝 옆으로 돌렸다. 벽 위로 은은히 빛나는 별이 하나 시선 안쪽으로 들어왔다.

형인 유진이 붙여놓은 야광별 스티커였다. 천장에 붙이겠다고 의자에까지 올라가 한참을 실랑이하다가, 결국 키가 닿지 않아 시무룩한 기색으로 벽에 붙인 별. 별 스티커를 받은 유현이 기쁨 한 점 없이 그저 멀뚱멀뚱 쳐다보기만 했는데도, 유진은 그 누구보다도 만족한 표정을 지으며 유현의 머리를 쓰다듬었었다.

 

-예쁘다, 그치?

 

부모조차도 꺼림칙하다 여기는 동생, 그리고 애정에 곧잘 답하지 않는 동생. 그런 동생에게도 유진은 애정을 퍼부었다. 유현은 무엇을 바라 자신을 그리 아끼고 사랑하는지 모르겠다며 의문을 던지면서도, 절로 떠오르는 형의 말갛게 웃는 얼굴에 입꼬리를 올렸다. 그러자 형의 애정을 다른 사람에게 나누고 싶지 않다는 생각도 두둥실 떠올랐다.

 

‘처음이야.’

 

무언가를 갖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유현은 침대 위에서 일어나 스티커가 붙은 벽을 바라보았다. 다섯 살 차이 나는 형이 최대한 높게 붙인 스티커가 유현의 손끝에 닿을 리 없었다. 그럼에도 유현은 팔을 한 번 뻗어보았다.

 

“…….”

 

역시나 닿지 않았다. 어차피 잡고 싶은 것은 저게 아니었기에 큰 상관은 없었으나….

 

텅 비었는지도 몰랐던 가슴 속에 무언가가 불쑥, 돋아난 기분이 들었다.

뒤이어 무감한 자신이 그동안 무의미하게 흘려버린 형의 애정에 대한 그리움이 돋아났다. 그 애정에 답하지 못했던 것에 대한 미안함 또한 솟았다. 그리고 줄줄이 걱정, 희망, 슬픔, 행복 따위가 뒤섞여 갑작스레 밀려들어왔다.

 

‘이게… 뭐지.’

 

유현은 입을 벌리며 미간을 찡그렸다. 갑작스러운 감정의 변화에 숨을 쉬기가 힘들었다.

 

‘이상해.’

 

갑자기 저 별이 손에 닿지 않는 것이 견딜 수 없이 억울해졌다. 그것이 비합리적인 생각임을 알면서도 감정이 솟아나는 것을 멈출 수가 없었다. 그 감각이 생경한데 또 싫지 않아, 그것마저 이상했다. 심장이 짓눌리는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기어코 유현의 눈에 퐁퐁 눈물이 솟아나기 시작했다. 흐엉, 하고 어린 울음소리가 일순 터졌으나 듣기 싫어 손으로 입을 꾹 틀어막았다.

 

“…유현아?”

 

그리고 문이 열렸다.

거실 불을 켰는지 환한 틈새로 유진의 얼굴이 갑작스레 어둠 안을 비집고 들어왔다. 걱정 어린 얼굴을 보고 있자니 왈칵, 울음이 터지는 것은 순식간이라 유현은 결국 손을 떼고 형에게 손을 뻗었다. 흐어엉, 하고 우는 소리에 당황한 형이 빠르게 유현을 안아올리며 등을 토닥였다. 그 따뜻한 품과 작은 토닥임 속에 유현은 기꺼이 몸을 파묻었다.

 

“유현아, 무서운 꿈이라도 꿨어?”

 

도리도리, 품 안에서 돌아가는 작은 머리를 느끼며 유진은 걱정스러운 얼굴을 했다.

아무래도 어린 동생이 악몽을 꾼 모양이었다. 이보다도 어릴 때도 운 적을 거의 본 적이 없었는데, 그런 유현이 이렇게 울며 매달릴 정도면 정말 무서운 꿈인 모양이지.

유현은 종종 밤에 잠을 자지 못하곤 했다. 어둠 속에서 덩그러니 혼자 멀뚱멀뚱 눈만 뜨고 있는 동생의 안쓰러운 모습을 한 번 본 뒤로 유진은 종종 밤중에 유현의 방에 들리곤 했는데…. 오늘 이리 울고 있는 유현을 마주하니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자신이 오지 않았으면 저리 소리를 죽이고 내리 혼자 울고 있었을까. 생각만 해도 마음이 아팠다.

유진은 달래듯 동그란 유현의 머리에 입을 맞추었다. 히끅, 딸꾹질까지 해보인 유현이 웅얼거리는 소리를 내며 더욱 깊숙이 유진의 품 안으로 파고들었다.

 

“혀엉, 형 어디 안 갈 거지….”

 

아, 가족이 다 사라지는 꿈이라도 꾸었나. 그것이 그리 두렵고 걱정되어서 이렇게 우는 것일까. 귀여움과 안쓰러움에 갈팡질팡 헤매는 유진의 대답이 없자 품속에 안긴 유현이 고개를 들었다. 큰 눈망울이 물에 젖어 반짝이는 것에 유진은 손을 뻗어 어설프게 유현의 눈물을 닦아주었다.

 

“형이 유현이 두고 어디 가.”

“내가, 형한테, 잘못해서….”

“응?”

 

유진이 고개를 기울였다. 잘못했다니, 무엇을?

유현은 언제나 얌전한 아이였다. 형이 제멋대로 이것저것 해도 그것에 반발 한 번 하지 않는 그런 동생. 이것이 좋다, 싫다, 하고 제대로 의견을 표하지 않는 것이 가끔 걱정되긴 했으나, 그 외에는 전부 사랑스럽기 그지없는 아이였다. 근데 그런 유현이 대뜸 자신에게 잘못했다고 하니 유진은 의아했다.

 

“형한테 뭐 잘못했어, 유현아?”

 

다시 품 안에서 히끅, 하는 유현의 딸꾹질 소리에 유진이 물을 갖다주겠다고 하며 품을 잠깐 풀었다. 그러나 유진이 멀어지려고 하자, 유현의 손이 유진의 옷자락을 꾹 잡았다. 아무래도 무서운 꿈을 꾸고 나니 혼자 있기 두려워진 모양이었다. 유진이 결국 알겠어, 하고 다시 유현을 품에 안아주는 데에도 유현은 옷자락을 꾹 쥔 손을 놓지 않았다.

 

“형이, 어디 안 갔으면 좋겠어….”

 

무엇을 잘못했길래 애가 이렇게 겁에 질렸을까, 싶지만 어쨌든 얌전하고 착한 유현이라면 그리 큰일도 아닐 터였다. 기껏해야 거짓말 한 번이지 않을까. 자신 또한 부모님 앞에서 거짓말을 해놓고 지레 겁을 먹어 먼저 울어버린 경험이 있었다. 유진은 다정히 유현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형은 항상 유현이 곁에 있을거야.”

“…정말?”

“응. 정말.”

 

유진은 잔뜩 겁을 먹은 유현이를 위해 계속해서 속삭여주었다.

형은 유현이를 사랑해, 형은 어디 안 가. 무서워하지 않아도 돼…. 다 괜찮아.

 

그 속삭임에 유현의 떨림이 서서히 멈추었다.

 

 

 

* * *

 

 

 

역시 형은 이상해.

 

유현은 그리 생각하며 유진의 등에 볼을 갖다대었다. 예민한 귀 안으로 쿵, 쿵 뛰는 작은 심장소리가 들렸다. 그 단순한 박동마저 따뜻하다는 생각이 들자 뒤이어 이제는 절대로 예전처럼 형에게 무감해질 수 없겠구나, 하는 생각도 따라붙었다. 상관 없었다. 지금이 더욱 행복했다.

 

“이제 괜찮아?”

“응, 형….”

 

어린 동생을 더 달래주겠다는 유진은 유현을 업고 밖으로 나왔다. 울음을 터뜨린 동생 때문에 잠도 자지 못하고 고생하고 있는 데에도 유진의 목소리는 밝았다. 유현은 그 목소리에 간질간질해지는 가슴을 느끼며 고개를 들어 주변을 바라보았다.

밤 속에 가로등이 환하게 총총히 빛났다. 가로등 불빛 아래에 벌레들이 윙윙 꼬이는 소리가 시끄럽게 귓전을 때리는 데에도 거슬리지가 않았다. 오히려 문득 방 안에서 빛나고 있는 그 작은 별이 생각났다. 유현은 손바닥을 형의 등 위에 꾹 갖다 대었다. 닿았다. 따스했다.

 

“형, 방에 붙여준 별 있잖아.”

“응.”

“…고마워.”

“…….”

 

갑작스러운 말이었는지, 유진의 어깨가 잠깐 떨리는 것이 느껴졌다. 혹시 자신이 무거웠던 것일까, 하고 유현이 걱정하는 사이 유진의 목소리가 나왔다.

 

“앞으로 형이 더 많이 붙여줄게.”

 

설렘과 기쁨이 잔뜩 묻어나는 목소리였다. 어떻게 이런 사람이 있지. 유현은 의구심을 떠올리면서도 미소 지었다. 응. 유현이 밝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앞으론 고맙다고 말해야지.’

 

감정을 깨달은 첫 순간, 유현의 머릿속에 떠오른 것은 이미 늦어버렸으면 어떡하냐는 불안감이었다. 어쩌면 반응 없는 어린 동생에게 쏟는 애정을 슬슬 포기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고. 이미 이 다정함은 떠나버린 것일지도 모른다고. 왜 다가왔는지 이유를 모를 애정이었기에 더욱 당장 사라질까봐 두려웠다. 이유 없이 생겨났다면 이유 없이 사라질 수도 있지 않은가.

꾸준했던 형의 사랑을 생각하면 터무니없는 걱정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으나, 일말의 가능성에 대한 두려움이 너무나도 커서 다른 생각을 덮어버리고 말 정도였다.

 

그러나 그 순간 여전히 동생을 사랑하여 걱정스러운 얼굴을 하고 나타난 형이 나타났다. 여전한 손길로 동생을 안고, 사랑한다고 속삭이고, 떠나지 않을 것을 약속했다. 형이 떠나지 않도록 붙잡을 수 있는 기회. 그것이 늦지 않게 찾아왔음을 깨달은 순간 안도감이 밀려들어와서…. 그래서 유현은 펑펑 울음을 터뜨렸다.

 

‘이제는.’

 

사랑한다고도 말해야지. 더 원한다고도 말할래. 형이 떨어지는 게 싫다고도 하고. 같이 자면 안 되냐고 물어봐야지. 잔뜩 솟아난 작은 생각들이 밤바람을 타고 흘러내렸다. 유현은 유진의 등에 콩, 이마를 대었다.

 

 

 

* * *

 

 

 

정작 사랑이 넘치는 것은 자신임에도, 동생에게 사랑스럽다는 말을 멈추지 않는 형.

남들이 두려워하고 꺼리는 동생을 서슴없이 안고 타이르고 예쁘다며 칭찬해주는 형.

어린 동생을 위해 제 욕심을 죽이면서도 불행한 줄도 모르고 행복해하는 형.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었을까?

 

생전 처음 맛보는 사탕을 뱉어내지 못하고 입안에 굴리고 마는 어린아이와도 같이, 그렇게 한유현은 한유진의 사랑에 물들고 중독되었다. 놓을 수도 없고, 그 단맛을 돌아보기 이전으로 돌아갈 수도 없었다. 그러기를 바라지도 않았다.

 

사랑을 배워 사랑을 하게 된 한유현에겐 이제 한유진만이 오롯했다.

​레이븐 님 (@RavenNest_f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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